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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정신 건강/기초 신앙생활

십자가란 무엇인가 - 우상 vs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상징

by 아이언멘탈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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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국기에 십자가가 들어있는 국가도 약 30개 정도 있고, 녹십자나 적십자 기관과 같은 단체들의 상징도 십자가입니다. 지금은 조금 줄었지만, 서울의 야경을 빨간 십자가로 채웠던 때가 있었고, 다양한 액세서리나 장식에 십자가 문양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십자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처형의 도구 십자가

1) 십자가 처형틀의 유래

십자가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처형 도구로 사용했던 처형틀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신 아시리아, 페니키아,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하던 처형 방법인데 로마에서 이 제도를 받아들여 식민지인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십자가형(Crucifixion)을 공식 채택했습니다. 처음에는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고통을 주는 가혹한 체벌에 불과했으나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한 처형법으로 변화했습니다. 실례로 티투스 장군은 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면서, 포로들을 매일 500명씩 십자가형애 처했는데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 만한 공간과 나무 십자가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형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2) 십자가 처형 방식 

십자가형의 처형 기구는 땅에 박혀 고정된 세로축의 사각 나무 기둥인 스티페스(stipes)와 죄인의 손이나 팔목에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가로축의 이동 가능한 사각 나무 기둥인 파티불룸(patibulum)으로 나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십자가형을 위하여 모든 도시에는 지반에 고정된 나무 기둥이 있어야 했습니다. 사형수는 가로축의 나무 기둥에 팔이 줄로 고정되어 못이 박히면,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세로축 나무 기둥 꼭대기에 얹혔는데 두 나무의 접합 부분에는 분리되지 않도록 홈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실제 고대 로마의 십자가형틀은 알려진 바와 달리 T자 모양이라는 설이 많습니다) 그리고 발목을 세로 기둥에 고정시켜 못을 박는 것으로 처형식이 끝납니다. 그 이후에는 중력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이 아래로 처지게 되며, 처진 몸이 횡격막을 압박하게 됨에 따라 질식사한다고 추정됩니다.

십자가형은 극도로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최악의 사형제도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일단 매달린 사형수를 근육경련과 질식으로 수 시간 내에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여 고통스럽게 죽게 하는 공개처형이었습니다. 하루 이상 매달려 있어야 했고, 형 집행 전에 채찍질을 당했으므로 매우 허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까마귀들에게 계속 쪼이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나무 표면에 긁혀 심한 고통을 당했고 숨을 쉴 때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므로 그 고통 또한 심했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벌거벗겨진 상태로 처형되며,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점도 사회적인 잔인성을 보여주는 특징입니다. 실제 로마에서는 철학자 키케로를 비롯 십자가형을 매우 혐오하여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1) 육체적, 심리적 극심한 고통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 이후, 가롯 유다에 의해 로마 병정들에게 넘겨진 예수님은 그 이후 재판 과정에서 같은 민족의 배신, 모욕, 제자들의 회피와 외면까지 겪으면서 심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재판 이후 옷이 벗겨지고,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면류관이 씌워지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을 당하고, 같은 유대인들의 갖은 모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비아돌로로사를 지나갔을 때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그저 따라가면서 눈물을 흘릴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될 줄 아셨고, 그렇게 해야만 했음을 아셨기에 그 고난과 고통을 묵묵히 견디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저는 눈곱만큼이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들고 가셨던 십자가 (실제로 사형수들은 십자가가 아닌 가로 기둥만 지고 갔다고 함)에 못이 박히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사명을 알고 있음에도 왜 자신을 버리시냐고 하나님께 외치셨던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2)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

처형 다음 날, 로마 군인들은 아직까지 살아있었던 나머지 죄수 2명의 다리를 부러뜨려 죽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금요일에 처형되었으므로 다음 날이 안식일이어서 더 이상 형집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사망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찔러 사망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예수님의 몸에서 하얀 피와 물이 섞여 나왔습니다. 사망을 확인한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사도들에게 시신을 인도하였으며 이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닦고 장례 절차에 따라 돌무덤에 안장했습니다. 

 

3)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

미국 흑인들 사이에 널리 불려졌던 흑인 영가중에 찬송가 136장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는 그들이 노예제도 밑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에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들은 이 찬송을 부르면서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이겨 나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거기 너 있었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무도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애써 외면하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너무도 비참하고 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는 비통의 십자가이며 사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실패의 십자가였습니다. 고통과 수치와 무시당함의 십자가가 신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강조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상숭배 논란

1) 십자가 상징성의 변화

십자가는 앞에서 거론했듯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했던 사형틀입니다. 사실상 예수님 이후 로마시대의 사람들은 십자가라는 상징에 매우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위인이 달려 죽은 십자가를 보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도 사도들은 십자가형으로 순교당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더더욱 기피했으며 로마인들조차도 그 잔인성에 혐오감이 컸던 십자가였습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1세 (A.D 306-337)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고 기독교를 공인하였고, 십자가 형벌을 폐지하면서 십자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하여 A.D 320~345년 사이 예루살렘에 이를 안치할 십자가성당과 부활성당을 건축하였고, 십자가를 공경의 대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431년경, 교회 첨탑에는 568년경부터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2) 십자가 사용에 대한 입장 차이

지금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십자가가 매우 일반적이지만 이전에 십자가 거치에 대한 찬반논란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가들 중 장 칼뱅과 츠빙글리는 십자가를 비롯한 성화, 성상들이 우상숭배로 이끌게 되므로 예배당 내부에 장식물 설치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루터는 십자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종교개혁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는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측은 교단법에서 교회 내 십자가 거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미신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1957년 이후 2019년까지 총 8회의 총회에서 십자가 부착을 금지하기로 가결했습니다. 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및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는 십자가 설치를 찬성하는 교단입니다. 십계명에 명시한 우상과 교회 예배당의 십자가는 다르며 예배 시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할 뿐 십자가 형상 자체에 기도하거나 십자가를 통해 기도 효과가 높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예장합동을 비롯한 십자가에 대한 숭배를 우려하는 측도 교회 외벽이나 첨탑에 설치하는 건 허용하기도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수많은 십자가 모양의 문양을 사용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는 형태 자체를 예배당에 설치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의 고상이 없는 십자가를 선호하며 개신교 십자가 상징의 전통이 되어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받은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 때문이지만 결국 부활하셔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통을 형상화한 십자가 형상은 신학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의 고상이 없는 십자가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 계열 신흥 사이비종교들에서는 십자가를 안 쓰는 경우가 꽤 눈에 띄는데,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십자가가 이교에서  비롯된 우상이라는 이유로 십자가를 세우지 않습니다. 타 교회 건물을 매입해서 자기들 교회로 만들 때도 십자가는 반드시 철거하며, 일부 심한 교인들은 십자가 세워진 건물은 우상이라며 출입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도 십자가를 세우지 않는데, 여기는 예수의 부활을 중요시해서 예수의 죽음의 상징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십자가를 우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도 십자가를 쓰지 않는데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이 아니라 원통형 일자 나무에 매달려 수난당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모양과 의미

1) 다양한 십자가 모양 

흔히 접할 수 있는 십자가는 가로보다 세로축이 더 길며 가로 가지를 기준으로 위보다 아래쪽이 더 긴 소위 '라틴 십자가'이나, 그 외에도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십자가가 존재합니다. 베드로가 순교할 때, 감히 예수님과 동일하게 죽을 수 없다고 하여 거꾸로 매달렸던 십자가를 비롯, 안드레는 X자로 매달려 순교하였으며, 정교회의 십자가는 세로축과 가로축 길이가 비슷하고 세로축 하단에 짧은 대각선 축이 하나 더 달려 있는 등 다양합니다. 

십자가는 흔히 알려진 라틴십자가외에 다양한 십자가 종류가 있으며, 특히 카톨릭에서는 여러 사용처에 따라 다른 십자가 모양을 활용함.
다양한 십자가 종류와 의미

 

2) 십자가 활용과 의미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십자가형으로 죽은 이후,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 아래에서도 믿음의 포기와 순교 중에서 후자를 택하면서 일종의 고난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예수님이 십자가형이란 고난을 통해 인류의 죄악을 씻고 죽었다 하여 일종의 구원의 이미지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십자가가 기독교에서 공인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의미 외에도 이와 같은 기존 종교의 관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이미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승리를 서간에서 말했으며 초대 교회에서 엄지로 이마에 십자 표시를 그었다는 증언이 있어 일찍부터 상징으로 도입된 걸로 보입니다. 흔히 한국에서 십자성호라고 하면 떠올리는 서방교회식 성호는 10세기 이후에 시작됐으며, 엄지로 이마와 입술, 가슴(왼쪽 → 오른쪽)에 십자표시를 긋는 관습은 천주교의 미사 혹은 성찬례 중 사제가 복음서를 읽기 전 사제와 신자들이 하는 행동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정교회는 가슴에 그을 때 오른쪽 → 왼쪽으로 순서가 다릅니다. 또한 개신교, 특히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는 거의 불문율로 정형화된 †자(라틴) 십자가만 쓰며, 십자고상이 아니더라도 쌍십자라던가, 끝부분이 변형된 형태의 십자가는 가톨릭에서나 쓴다고 보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성당은 첨탑에 다는 십자가가 가지각색이지만 개신교 교회는 대부분 규격화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널리 활용되는 신앙의 도구이며 믿지않는 사람들도 악세사리나 장식용으로 많이 활용하는 문양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상징임.
나무 기둥에 묶여있는 십자가

 

기독교의 상징 십자가 

1)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 그 자체입니다. 사형틀이라는 용도에서 예수님이 대신 죗값을 치르고 고난을 받고 고통 중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가 사하여졌다는 사실이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대신 죽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노아 때처럼 홍수로 전 인류를 쓸어버린다거나 다양한 재해로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기구를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획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과 능력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돌아가신 사실이 끝이었다면,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 감사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시며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 후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겪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극복한 유일한 존재임을 제자들이 깨닫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능력을 외치는 선포자로 변화시켰던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능력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능력의 피였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능력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외에서 결코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사함의 능력과 구원함의 능력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승리의 십자가

(골로새서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는 그 당시 통치자들, 그리소 세상의 모든 권력과 세력을 극복하는 도구이자 어둠을 밝히고 승리하는 도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죄와 죽음과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죄악을 이기셨고 죽음을 이기셨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들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바로 승리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를 믿음으로 죄를 이길 수 있고,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 있고,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을 이길 수 있는 우리들의 신앙과 삶 자체가 승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에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증거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받게 된다는 복음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얽매이는 모든 장애물과 고난은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치며

십자가의 유래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십자가가 우상이냐 아니냐 논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다양한 십자가 모양과 의미에 대해서도 찾아봤습니다. 끔찍한 사형틀인 십자가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고난과 승리의 상징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십자가 모양들, 교회 내부에는 거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무덤 같다는 핀잔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볼 때 생각나는 내 죄로 인한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 그 고통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능력,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내가 세상에 살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감이 바로 십자가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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