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영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모두 건강한 삶을 추구합니다.
영혼과 정신 건강/말씀과 적용

성경 말씀 - 나병 환자는 어떻게 기적의 치유를 받았을까 (마 8:2-3)

by 아이언멘탈 2024. 1. 23.
반응형

오늘의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8장 2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로 사시면서 행하신 다양한 치유의 기적 중 한 가지로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와 간구한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고쳐주신 유명한 일화입니다. 나병이란 무엇인지, 그 시대에 어떤 의미였는지, 나병환자는 사회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했길래 기적의 치유를 받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태복음 8:2-3

 

 

나병이란 무엇인가

나병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이 활동하셨을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혐오받던 질병이었습니다. 나병(癩病)은 한자 '문둥병 라(癩)'와 '병 병(病)'을 합친 것으로 두음 법칙에 의해 '나'로 읽힙니다. 이는 말 그대로 '문둥병'을 가리키는 말이며 '살이 썩거나 물러서 힘없이 처져 떨어지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동사 '문드러지다'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한센인 사회에서 이 말은 전통적으로 편견과 차별이 담긴 표현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문둥병'이나 '나병' 보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한센병' 쪽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1871년 노르웨이의 의사 '게르하르트 헨리크 아우메우에르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 1841 ~ 1912)'이 나환자의 나결절 조직에 세균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1874년 이를 나균(Bacillus leprae)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따 '한센병'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습니다.

노르웨이의 의사인 헨리크 한센은 나환자에게서 나균을 발견하여 유전병으로 알려졌던 나병이 사실 전염병임을 밝혀냈음.
한센병을 발견한 헨리크 한센 (1841 ~ 1912)

 

이 병은 오늘날에도 완치가 되지 않고 겨우 나병의 진행만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눈썹이 빠지고, 눈동자가 이상해지고, 성대까지 헐어서 목소리도 이상하게 변한다고 합니다.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손과 발이 이지러지며 살이 썩어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참으로 볼 품 없는 사람,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하는 저주받은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됨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자아를 발견하고 나병환자처럼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이 기적을 체험한 나병환자는 다음 3가지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 예수님께 나아온 자

본문에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로 말씀이 시작합니다. 이 당시 나병환자는 사회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들은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해야 하고 그들만이 살 수 있는 곳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를 어기면 돌에 맞아 죽어도 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이 나병환자로부터 바람 부는 쪽에 있으면 그 나병환자는 약 90m 떨어진 거리에서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했고, 바람 부는 반대쪽에 있으면 약 45m 떨어진 거리에서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은 보통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절대로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없는 그가 허다한 무리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사람들의 온갖 저주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나왔습니다. 너무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심령이 가난하였기에 예수님의 긍휼을 얻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왔기 때문에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을 섬기는 자

본문에 "한 나병환자가 나와와 절하고 가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절하고'는 '무릎을 꿇다'는 뜻으로 주로 '경배하다'는 뜻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비록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지만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 경배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겸손은 기독교의 중요한 미덕 중의 하나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저주의 병을 짊어지고 감히 사람들 틈에 끼여 예배할 수 없는 자가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너무 소중하기에 어느 누구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픔을 끌어안고 겸손한 마음과 진실함으로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 정말 그는 예수님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3. 예수님의 뜻만을 구한 자

본문에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주여'라고 부르는 이 말은 이 시대의 우리처럼 의미 없이 부르는 값싼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나병자로 살이 썩어 떨어져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지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절박한 문제 앞에 오열하듯이, 피를 토하듯이 자기의 생명을 내걸고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여 원하시면 저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거룩한 뜻에 자기의 문제를 모두 맡기는 표현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철저히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온전히 예수님의 뜻에 자기의 문제를 맡겼습니다. 내 뜻을 생각하기 전에 주님의 뜻을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의 병 고치는 것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는 절박한 순간에도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매일매일 살이 썩어 육체의 부분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내 입장만 고집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주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뜻이 아니기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설령 주님으로부터 치료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이 모습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강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무지 당시의 의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께 대한 절대 신앙을 가졌습니다. 한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본문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치며

기적을 만나고 싶습니까? 오늘 본문의 한 나병환자처럼 3가지를 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갑시다. 그리고 믿고 맡깁시다. 그리고 주님 뜻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응답받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 나병환자  이상의 절박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기적을 만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