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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정신 건강/말씀과 적용

예배 설교 -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

by 아이언멘탈 2024.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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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전에는 서양에서도 여자라는 존재가 남자와 비교하여 중요성이 덜하다고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출애굽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규모가 장정만 60만 명으로 나와있는데, 여성과 미성년자, 노인 및 부상자는 제외한 숫자이므로 최소한 200만 명이 넘는 규모라고 추정합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실 때에도 5천 명이라는 규모의 인원들이 언급되는데 이 또한 장정만 헤아린 숫자였습니다. 

이렇듯 여자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옵니다. 수가성 여인,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병든 딸을 치유하기 위해 부르짖던 여인,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 혈류증을 알던 여인 등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킨 수많은 사역에는 여자가 대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기적을 체험한 여인들 중 하나였으며, 당시 마리아라는 이름이 흔했던 시대로, 마치 나사렛 지역 출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과 같은 방식의 막달라 지역 출신 마리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한복음 20:11-18

 

 

어두운 과거를 가졌던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Magdalene)는 갈릴리 바다 북서쪽 해안 디베랴의 북쪽 약 5km 지점에 있던 성읍의 지명입니다. 이 지역 출신인 막달라 마리아는 사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8:2-3)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일곱 귀신, 즉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던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막달라 마리아의 정산상태는 완전히 악한 영에 사로잡혔다는 의미이며, 정신병에 많이 힘들어했을 것입니다. 이 당시 정신병은 죄의 대가로 얻었다 취급하던 풍조가 있었으며 그런 사람은 집안의 수치로 취급받아 가족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귀신은 여인에게서 나갔고, 정신병은 없어졌으며, 고침을 받았습니다. 건강은 회복되었고 이후의 삶은 완전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일생동한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막달라 마리아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 즉 예수님과 사도와 그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이전처럼 다시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면 자신의 소유로 그들을 온전히 섬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삶이 온전히 주님이 책임져주신다주재권신앙이 명확하게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누는 모습은 초대 교회에서 보여줬던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에 물질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주재권 신앙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금이 아까워 온전히 감사함으로 드리지 못한다면, 넉넉한 상황이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물질적인 지원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여전히 세상적인 두려움과 걱정에 잡혀 주님이 원하는 헌신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우리들은 이 같은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주재권 신앙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내 삶을 주관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간, 재능 모두 예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봤던 막달라 마리아

(마가복음 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실제로는 십자가 근처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봤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모습을 지켜봤고, 이후 장사 지낼 때 무덤가에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와서 지켜봤습니다. 무덤을 봉인한 모습을 지켜보고, 주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계속 보다가 안식일이 되었으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흩어지고, 저주하고, 도망갔음에도 왜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을 지켜봤을까요? 바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감성을 높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 들어보셨죠? 신체적인 특성상 여자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므로 보호해야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상식적인 한계를 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주님에 대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탄의 힘을 이겨낼 수 없고, 물리칠 수 없고, 결국 그들의 먹잇감에 되기 십상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결국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확인하는 존재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을 장사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갔던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뿌리기 위해 다시 달려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외에 어머니 마리아 등 여러 여인이 같이 이동했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빨리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이 열려있었습니다. 당황했지만 돌무덤의 큰 돌을 옮기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되었다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무덤이라 꺼림직하고 두려웠을 수 있는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으므로 두려움 없이 바로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두 천사를 만나 예수님의 몸이 없어졌다고 울며 불며 예수님만을 찾던 그녀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동산지기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예수님인 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목격한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첫 사람이며 오로지 이 세상에 한 명뿐입니다. 그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막달라 마리아보다 먼저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첫 증인이라는 이 축복은 막달라 마리아만이 가진 축복입니다.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선포자가 되는 위대한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임. 12제자나 가족보다 먼저 만나는 축복을 얻었으며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해줌.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 (알렉산더 이바높프 작품)

 

 

마치며

이 시대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고 내가 잘났음을 주변에 자랑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의 삶도 주님께서 위대하게 변화시키리라 믿습니다. 주님을 위한 위대한 사명이 우리에게 부여되었음을 믿고 변화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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