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자라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1~2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련을 중요하게 여기고, 고행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 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우리가 구원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죽음, 방언, 신유의 은사와 같은 특별한 어떤 것만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일상에서의 삶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시고 살아 계신 것,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 해가 지는 현상, 나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일터가 있어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삶,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함, 성전에 나와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 등 많은 일상생활을 당연히 주어진 걸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음
첫째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 이후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며 수고로움으로 삶을 살아가야 했을 때부터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봐도 죄성에 물든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생각나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 누구도 자신은 죄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인간이 어찌 감히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나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구원에 관하여는 절대 절망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보내신 예수님,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면서 구원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죄성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하며 싸우겠지만 결국은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은혜로 변화되는 삶
구원받은 성도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면 가족이 행복하고, 사회가 건강해지고, 나라가 발전합니다. 내가 아닌 남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 변화의 결과를 맛보기는 어렵습니다. 남이 변화하는 것보다 내가 변하는 것이 빠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은혜받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는 설교 말씀이 좋았다라거나 가슴이 후련해졌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능력을 받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은혜의 영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인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분이 바뀌는 것처럼, 은혜를 받으면 인격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평소에 하는 말과 생각과 우리 인생의 목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은혜를 알기 전에 사울은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었고, 예수 핍박자가 예수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분토와 같이 버렸습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 자체가, 삶 자체가 변화됩니다.
은혜로 능력을 얻음
베드로는 당시 뛰어난 지식인도 아니었고 집안이 훌륭하지도 않은 어부였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였으나 회심한 이후 성령의 능력으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자신의 부함과 가난함에 얽매이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말씀의 능력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순교의 면류관을 썼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당시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벋어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타락한 종교를 개혁했습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무디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처럼 우리가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크게 나타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권세를 얻게 되고, 이로 인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은혜로 축복을 받음
우리는 복 받아야 합니다. 복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저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은혜의 보좌를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감사하기만 하면, 구하기만 하면,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주저할 이유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담대히 나아와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재물 얻을 능력까지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재물을 우리 욕심대로 구하고, 욕심대로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을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 사용하게 되는 우리가 문제이지, 하나님은 우리가 부유하고 복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마치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소소한 모든 행복과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하며, 더욱 겸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 가득한 삶을 살아가시길, 받은 복을 나누고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시길 축원합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내가 잘해서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생각한다면 불평불만보다는 감사가 가득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려움과 고난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그 어려움과 고난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준비하신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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